증권사 검사 전방위 확대...금감원, “내부통제 소홀 CEO 책임”
“잘못된 관행 유발 부적절한 인센티브 체계 재설계 해야” 지적

금융감독원. [사진=연합]
금융감독원. [사진=연합]

[데일리시사닷컴] 금융당국이 증권사 간 ‘채권 돌려막기’ 관련, 불공정행위에 칼을 빼 들었다. KB증권 등 일부 증권사가 “자전거래와 만기 불일치 운용은 관행이며 불법이 아니다”라는 증권사 해명에 반박하며 잘못된 관행에 대해 일침을 가하기 위해서다. 금융당국은 그동안 증권사들이 채권형 랩·특정금전신탁(신탁) 등 운용 과정에서 암묵적으로 인정돼온 자전거래나 파킹 거래 관행이 시장 변동성과 맞물려 자금시장의 잠재 불안 요인으로 확대될 가능성이 제기됨에 따라 이같은 행동에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이에 따라 그동안 증권사의 관행으로 여겨졌던 채권 돌려막기에 제동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금융감독원은 지난 5일 27개 국내외 증권사 CEO를 소집해 증권사 영업관행 개선을 위한 간담회를 개최한 자리에서 최고경영자 책임론을 꺼내 들었다. 증권사의 불법적 영업관행은 CEO의 책임이라고 언급하며 불법영업 엄단에 대한 의지를 드러냈다. 이 자리는 부실 사모펀드 환매중단 사태에 이어 차액결제거래(CFD) 사태, 주가조작 논란, 자전거래 의혹 등 자본시장 질서를 어지럽히는 사태에  책임을 묻기 위해 금융당국이 소집했다. 금감원이 사장단의 책임을 강조한 배경에는 지난해 레고랜드 사태로 채권형 랩어카운트(랩)·신탁에서 발생했던 대규모 환매중단이 있다. 

KB증권을 비롯한 일부 증권사는 지난해 ‘레고랜드 사태’로 인해 랩·신탁 상품에서 발생했던 대규모 손실과 이로 인한 환매(고객 투자금을 중도에 돌려주는 것) 중단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편법을 저지른 것으로 확인됐다. 앞서 SK증권은 만기가 짧은 채권형 신탁을 팔아 모은 자금으로 장기 채권에 투자하는 만기 불일치 운용을 하다 사고를 냈으며 KB증권 역시 랩·신탁에 투자했던 법인 고객의 손실을 보전하기 위해 다른증권사와 편법 자진 거래를 벌였다가 금융감독원의 조사를 받았다.

이와 관련해 KB증권은 "계약 기간보다 긴 자산으로 운용하는 미스 매칭 운용은 불법이 아니다"라며 "상품 가입 시 만기 미스매칭 운용전략에 대해 사전 설명했으며 고객 설명서에 계약기간 보다 잔존만기가 긴 자산이 편입돼 운용될 수 있다는 내용을 고지했다"고 설명했다. KB증권은 이어 "손실을 덮을 목적으로 타 증권사와 거래를 한 것이 아니다. 지난 9월 말 레고랜드 사태로 시중금리가 급등하고 CP시장 경색이 일어나면서 고객들의 2차 피해가 우려돼 지난 11~12월께 해당 거래를 통해 유동성을 지원했다"며 "이후 연말 회계 결산을 위한 회계법인과 논의를 통해 CP를 장부가가 아닌 시가로 평가하면서 손실을 인식하게 됐다. 시기적으로 손실을 덮거나 고객 손실을 받아줄 목적 거래가 아니었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금감원은 이같은 운용방식에 대해 반박했다. 금감원은 “자본시장법이 금지하는 불법적인 수익 보전에 해당한다”며 “특정 투자자 이익을 해치면서까지 법인 투자자 손실을 보전해 준 행위는 명백한 편법행위”라고 꼬집었다. KB증권의 손실보전 금지 위반은 처음이 아니다. 지난 2019년 6월 금감원 종합검사 당시에도 손실보전 금지 위반을 지적받기도 했다.

함용일 금감원 부원장은 이날 "금감원에서 점검중인 증권사 랩‧신탁 관련 불건전 영업관행의 핵심은 일부 증권사가 고객의 랩‧신탁 자산을 운용하면서 특정 투자자의 이익을 해하면서까지 다른 투자자에게 손실을 보전했다는 것"이라며 “랩·신탁 관련 불건전 영업관행은 CEO의 관심과 책임의 영역이라는 것과 불법행위를 전제로 하는 영업관행에 대해 엄정히 대처할 것”이라고 피력했다. 함 부원장은 이어 “더 이상 고객자산 관리‧운용과 관련한 위법행위를 실무자의 일탈이나 불가피한 영업관행 탓으로 돌릴 수 없다"면서 "컴플라이언스, 리스크관리, 감사부서 등 어느 곳도 위법행위를 거르지 못했다면 이는 전사적인 내부통제가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은 매우 심각한 문제다. 내부통제 최종 책임자인 최고 경영진과 무관하다고 할 수는 없다"고 질타했다.

이런 상황에서 국내 증권업계는 부동산 PF 등 단기성과에 집착하거나 랩‧신탁과 같이 관계지향형 영업을 지속하는 등 증권업의 창의성‧혁신성과는 거리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증권사 직원의 주가조작 개입 혐의와 애널리스트 및 펀드매니저의 사익추구 등 불법행위까지 더해져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 전반의 신뢰가 크게 훼손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경제 전문가들은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잘못된 관행을 유발하는 부적절한 인센티브 체계를 재설계해야 하고, 실효성 있는 내부통제 체계를 구축하는 한편 자본시장에서의 자금중개 및 공급이라는 증권사 본연의 기능을 강화하는데 역량을 집중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금감원이 최근 사회 전반에 걸쳐 문제가 되고 있는 이권 카르텔과 관련해 금융이 직‧간접적으로 개입되는 일이 없도록 외부인 사적접촉 관련 규정 준수 등 원칙에 입각해 검사‧감독업무를 엄정하게 수행할 방침을 밝히면서 앞으로 증권사들이 채권 돌려막기 등 편법관행에 변화가 생길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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