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장·부회장직 28년만 신설...주총서 95% 찬성률
유한양행, “미래지향적인 조치...다른 목적 없어”

유한양행. [사진=연합뉴스]
유한양행. [사진=연합뉴스]

[데일리시사닷컴] 고(故) 유일한 박사의 설립이념인 ‘주인 없는 회사’로 유명한 유한양행이 결국 회장직제를 부활시켰다. 유한양행은 28년만에 회장과 부회장직 신설 안건을 놓고 논란이 일었지만 원안대로 통과됐다. 앞서 이정희 전 대표이자 현 이사회 의장의 ‘기업 사유화 시도 의혹’에 휩싸이면서 진통을 겪은 터라 적잖은 파장이 예상된다. 

유한양행은 지난 15일 오전 서울시 동작구 유한양행빌딩 4층 대강당에서 제 101기 정기 주주총회를 열고 회장·부회장직을 신설하는 정관 일부 변경안을 95%의 찬성률로 통과시켰다. 유일한 박사의 뒤를 이은 연만희 고문이 회장에서 물러난 지 28년 만이다. 또 사내이사 선임건 등 나머지 6개 안건도 원안대로 의결했다. 

이날 주총에서는 ‘회장, 부회장직 신설’에 따른 정관 일부 변경건이 주요 관심사였다. 정관 제33조를 기존 ‘이 회사는 이사회의 결의로서 이사 중에서 사장, 부사장, 전무이사, 상무이사, 약간인을 선임할 수 있다’에서 ‘이 회사는 이사회의 결의로서 회장, 부회장, 사장, 부사장, 전무, 상무 약간인을 선임할 수 있다’로 변경됐다.

유일한 박사의 손녀이자 하나뿐인 직계 후손인 유일링 유한학원 이사도 직제 신설에 우려를 표하며 거주 중인 미국에서 귀국해 이날 주주총회에 참석했다. 유 이사는 “할아버지 정신이 그 무엇보다도 중요하다”면서 분리 경영을 내세운 창업주의 이념에 이번 회장직 신설이 어긋난다는 입장을 내비쳤다.

유 이사는 유한양행의 최대주주인 유한재단의 이사로 재선임되지 못했다. 대신 6년간 사장을 지낸 이정희 이사회 의장이 재단 이사로 등재됐다. 이날 주총에 회장과 부회장직 부활 안건이 상정되자 일부 직원들은 트럭 시위까지 벌이며 회장 직제 부활에 반대했다. 이들은 현 경영진이 사실상 회사를 사유화하고 장기 집권하기 위해 행동을 취하는 게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하기도 했다.

이를 의식한 듯 조욱제 유한양행 대표는 “회사 규모가 커짐에 따라 정관 변경 필요성을 느꼈다”며 “글로벌 시장에서 능력있는 사람을 영입하기 위한 조건들이 현실과는 맞지 않았고, 법무법인 컨설팅을 통해 회사 정관을 수정하는 게 좋겠다는 의견을 들었다”고 설명했다. 

유한양행 측은 회장직 신설을 두고 '글로벌 유한'으로 발돋움하는 데 필수적인 절차라고 일축했다. 유한양행은 “일부 논란이 되고 있는 회장, 부회장 직제 신설은 회사의 목표인 글로벌 50대 제약회사로 나아가기 위해 선제적으로 직급 유연화 조치를 한 것이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유한양행 관계자는 “정관 개정은 우선 회사의 양적· 질적 성장에 따라, 향후 회사 규모에 맞는 직제 유연화가 필요하다는 것이고 현재 ‘대표이사사장’으로 정관상 표기되어 있는 것을 표준정관에 맞게 ‘대표이사’로 변경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유한양행에서 회장에 올랐던 사람은 창업주 고 유일한 박사와 연만희 고문 두 명이었으며 연 고문이 회장에서 물러난 지난 1996년 이후에는 회장직에 오른 이는 없었다. 유한양행은 1969년부터 전문경영인 체제를 선택해 이사회를 중심으로 주요 의사결정을 진행해오고 있다. 이사회 구성원은 사외이사 수가 사내이사보다 많으며 감사위원회제도 등을 두고 있다.

저작권자 © 데일리시사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